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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정왕은 검은색 망포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옥관을 쓰고 있었다.
그는 심균당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섭정왕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 못 보던 사이에 애송이는 살이 좀 찐 것 같았다.
얼굴은 여전히 갸름했지만, 몸은 전보다 건강해진 것 같았다. 최소한 전처럼 비쩍 마른 원숭이 같지는 않았다.
품에 안으면 전처럼 뼈만 앙상해 배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흥후가 아무 기별도 없이 서왕부를 찾아온다 해도 나는 개의치 않을 텐데 말이야. 시간 나면 종종 들르도록 하게.” 섭정왕은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심균당은 섭정왕이 자신을 수렁에 빠뜨리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섭정왕은 영흥후부를 방문한 게 아니라 심균당을 해코지하려고 온 것이다.
황제 지지파인 영흥후부와 섭정왕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었다.

오늘 손님들한테 채소를 직접 재배하고 섭정왕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는데 그들이 떠나자마자 섭정왕을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아무리 해명해도 믿어 주지 않을 것이다.
순간 심균당은 말문이 막혔다.
심균당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다음 억지로 공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전하는 존귀한 분이시고 소신은 비천합니다. 전하를 모시기에는 자격이 한참 부족합니다.” “영흥후는 너무 자신을 낮추지 말게. 조금 전 연회에 참석했다가 돌아가는 손님들을 보았네. 신선한 채소를 하나씩 들고 돌아가더군. 손님들에게 채소를 나누어 줄 만큼 형편이 좋은 영흥후부가 비천하다면 연경성에는 부유한 가문이 하나도 없겠군. 아니 그러한가, 영흥후?” 섭정왕은 웃고 있었지만 은근히 심균당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전하, 오해십니다. 이제 채소는 연경성에서 특별한 것도 아닙니다. 전하께서도 채소가 있지 않으십니까. 소신을 비웃지 말아 주십시오.” “나한테 있는 채소는 영흥후만큼 다양하지도 않다네.” 심균당은 불만에 가득 찬 섭정왕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난감해하며 섭정왕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섭정왕은 어쩔 줄 몰라 파워볼사이트 하는 심균당을 훑어보았다.
‘애송이가 너무 물러 터졌군. 내키는 대로 몇 마디 했을 뿐인데 말도 못 하고 쩔쩔매는 꼴이라니…….’ 조정에는 늙은 여우와 능구렁이들이 수두룩했다. 조회에서 지금처럼 멍청하게 군다면 심균당은 문무백관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
심균당은 뻔뻔하고 독해질 필요가 있었다.
섭정왕은 심균당을 골려 줄 마음이 싹 가셨다.
심균당은 연회를 통해 채소를 알리느라 밥도 뜨는 둥 마는 둥 한 통에 배가 고플 것 같았다.
더구나 그는 아직 성장기라 밥을 많이 먹어야 할 때였다. 매끼 배불리 먹어야 더 잘 클 수 있었다.
심균당이 반박할 말을 찾느라 머리를 쥐어짜고 있을 때 앞에서 섭정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됐다. 자네와 말씨름하고 싶지 않다. 왕부에서 급히 나오느라 점심을 먹지 못했다. 영흥후는 지금 먹을 것을 내올 수 있겠는가? 오면서 듣자 하니 하인들이 발하공 얘기를 하더군. 그 음식을 내오도록 하게.” 심균당은 어안이 벙벙했다.
염라대왕은 듣기 좋게 에둘러 말했지만 실제로는 밥을 구걸하고 있는 셈이었다.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음식점에서 주문하는 것과 같았다.
‘아니 이보시오, 영흥후부가 무슨 주루인 줄 알아! 그리고 뭐? 왕부에서 급히 나왔다고? 지나가는 소가 웃겠구만. 시위들을 풀어 영흥후부 주변에 오랫동안 매복하고 있었는지 알게 뭐람! 그러지 않고서야 손님들한테 발하공을 대접했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 심균당은 화가 치밀었지만 조정 권력을 장악한 섭정왕에게 차마 대들 수는 없었다.
결국 최대한 울분을 삼키며 섭정왕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다.


심균당이 대답하기 전, 문에서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나리, 말씀하신 것들을 모두 가져왔습니다.” 잠시 후, 영춘과 백매가 냄비와 찬합을 들고 화청으로 들어왔다.
두 시녀는 섭정왕과 심균당을 보고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 버렸다.
영춘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백매를 팔꿈치로 툭 쳤다.

두 시녀는 섭정왕과 심균당에게 예를 올렸다.
“섭정왕 전하, 전하께 문안을 여쭙습니다.” 섭정왕은 심균당의 측근 시녀들을 처음 보았다.
두 시녀는 몸매가 늘씬한 미인이었다.
왼쪽 시녀는 조금 큰 키에 눈매가 시원스러웠고 허리가 가늘었다.
오른쪽 시녀는 황실 여자와 비교해도 빠지지 않을 만큼 얼굴이 예쁘장하고 풍만한 가슴을 가졌다.
심균당이 두 시녀를 좋아할 만했다.
눈빛이 싸늘해진 섭 파워볼게임사이트 정왕은 말하기도 싫다는 듯 얇은 입술을 꼭 다물었다.
영춘과 백매는 냉기가 위에서 내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져 무의식적으로 몸을 덜덜 떨었다.
두 시녀는 냄비와 찬합을 들고 있었다. 예를 올리기 위해 자세를 낮춘 두 시녀는 오래 버티기가 힘들었다.
두 시녀는 본능적으로 섭정왕이 뿜어내는 살기를 느낀 탓에 몹시 힘들어했다.


섭정왕은 인사를 받아 주지 않은 방식으로 시녀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심균당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심균당은 영춘과 백매에게 다가가 몸을 일으켜 세운 다음 조용히 지시했다.
“저쪽에 냄비와 음식을 준비하도록 해.” 심균당은 두 시녀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눈짓을 보냈다.
두 시녀는 근심 어린 눈빛으로 심균당을 쳐다보았다가 화청 탁자에 음식을 차렸다.
섭정왕은 심균당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표정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섭정왕은 심균당이 은근슬쩍 시녀들을 감싸고돌자 화가 났다.
두 시녀에게 잠깐 서 있는 벌을 준 것뿐인데 심균당은 그것조차 보고 있을 수 없어 시녀들을 멀리 떨어지게 했다. 주인과 시녀 사이의 정이 무척 애틋한 듯했다.


“영흥후는 측근 시녀를 끔찍이 아껴 나는 안중에도 없나 보군, 안 그런가?” 섭정왕은 심균당을 겁주려고 얼음을 씹어 먹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구석에 서 있던 진천화는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진천화가 보기에 섭정왕은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 반대로 밀어내고 있었다.
지금처럼 말하면 심균당이 섭정왕에게 호감을 가질 리 없었다.
부하인 진천화가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좋아하는 사람을 대할 때는 간이라도 빼 줄 것처럼 해야지요, 전하. 이리 대하는데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섭정왕은 만날 때마다 심균당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억지로 일을 시키거나 권력을 내세워 사람을 억압하려고 들었다.
그렇게 사람을 얻는다고 해도 그가 과연 진심으로 섭정왕을 좋아할지는 의문이었다.
아니, 그렇게 강압적으로 나오는데 아랫사람이 진심으로 따른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제129화 어두운 그림자가 하나 더 생기다 섭정왕은 갈 길이 멀어 보였다.
진천화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심균당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하, 시녀들은 소신과 함께 자라 자매나 다름이 없습니다. 당연히 누이 같은 시녀들을 아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정의 주인이신 전하가 신하들을 아끼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섭정왕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누이라?’
심균당이 시녀들을 여자가 아니라 누이처럼 여긴다고 하자 섭정왕의 기분이 좋아졌다.
심균당의 말이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심균당의 말에 따른다며 측근 시녀에게 남녀 간의 감정이 없고 가족의 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균당의 마음에 다른 사람이 없다면 희망을 가져 볼 만하다고 섭정왕은 생각했다.
“나도 매정한 사람이 아니다. 더 따지지 말자꾸나.” 심균당은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심균당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 섭정왕에게 욕을 퍼부어 대고 있었다.
염라대왕은 심균당의 시녀를 벌 줄 자격이 없었다.
그러나 생각은 어디까지나 생각이었고 해야 할 의무는 충실히 이행해야 했다.
심균당은 섭정왕에게 옆쪽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전하, 발하공이 준비되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섭정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심균당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진천화는 내심 기쁘기 그지없었다. 방금 두 시녀가 들어왔을 때 진천화는 음식 냄새를 맡았다. 영흥후부 전정 화청 밖에서 맡았던 바로 그 냄새였다. 군침이 절로 나 입 밖으로 침이 흘러내릴 뻔했다.
섭정왕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덕에 진천화는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어 보았다. 하지만 발하공처럼 향긋한 음식 냄새는 맡아 본 적이 있었다.
섭정왕이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해 준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듯싶었다.
아직 혈기왕성한 나이고 한로투스바카라 나절을 굶었던 터라 진천화는 소 한 마리도 너끈히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병풍을 돌자 화청 식탁에 냄비가 놓여 있었다.
냄비 옆에는 신선한 채소와 고기도 있었다. 잘 손질된 채소는 여덟 가지쯤 되어 보였다.
가짓수가 섭정왕이 평소에 먹는 것보다도 훨씬 많았다.
진천화는 섭정왕을 따라 변방에 갔을 때 ‘타변로’를 먹어 본 적이 있었다. 타변로는 주로 야외에서 먹는 음식이었는데 무쇠 냄비에 물과 소금을 넣은 다음 소고기와 양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넣었다. 푹 끓인 다음 고기를 먼저 먹고 나중에 탕을 먹었다.
타변로는 영흥후부의 발하공과 비교했을 때 정말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컸다.
냄비에서 끓고 있는 육수에서 구수하고 향긋한 냄새가 났다.
심균당은 섭정왕과 진천화를 식탁으로 안내했다.
진천화가 섭정왕에게 공손하게 말했다.
“전하, 앉으시지요.”

섭정왕은 사양하지 않고 상석 옆에 앉았다.
진천화는 섭정왕이 앉는 것을 확인한 후 자기도 섭정왕보다 조금 낮은 자리에 앉으려고 했다.
밖에서 식사할 EOS파워볼 때 두 사람은 늘 그렇게 했다. 진천화가 그렇게 해도 섭정왕이 아무 말을 하지 않자 마음이 놓였다. 더구나 맛있는 음식이 앞에 있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런데 진천화가 엉덩이를 의자에 대기도 전에 섭정왕의 날카로운 눈빛이 훑고 지나갔다.
진천화는 몸을 떨며 즉시 섭정왕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진천화는 앞에 놓인 맛난 음식이 못내 아쉬웠다. 그는 개처럼 충성스러운 눈빛으로 섭정왕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는 남아서 밥을 먹게 해 달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섭정왕은 칼처럼 그의 간절한 바람을 잘라 냈다. 섭정왕은 자기감정에 충실했고 눈에 거슬리는 것은 그냥 두지 않았다.
진천화는 내키지 않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그는 주먹 쥔 손을 감싸며 말했다.
“전하, 방금 끝내지 못한 일이 떠올라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심균당은 진천화의 일이 자신과 무관했으므로 섭정왕을 쳐다보았다.
섭정왕은 진천화에게 손짓했다.
“빨리 다녀와라.”
“네, 전하.”
진천화는 말을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소풍거 화청을 빠져나갔다.
심균당은 염라대왕이 빨리 식사를 마치고 떠나 주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진천화가 무슨 일을 처리하러 가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영춘과 백매는 전전긍긍하며 식탁 옆에서 시중을 들었다. 영춘은 찻주전자를 들고 있었고 백매는 수건과 공용 젓가락을 들로 있었다. 두 시녀는 언제든 두 사람의 식사를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심균당은 두 시녀를 수시로 힐끔거렸다. 겁을 먹은 백매는 손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섭정왕은 두 시녀에게 알 수 없는 적의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두 시녀를 화청에서 내보내는 게 나을 듯싶었다.
자칫 염라대왕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가는 두 시녀를 지켜 주기가 어려울 수도 있었다.
다행히 진천화도 자리를 비웠으니 두 시녀를 내보낸다 해도 섭정왕이 신경 쓰지 않을 듯했다.
“영춘아, 백매야, 물러가도록 해.”
영춘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심균당을 쳐다보고는 백매의 손을 잡아끌며 심균당에게 예를 올린 후 조용히 화청을 나갔다.
섭정왕은 심균당이 훼방꾼 같은 두 시녀를 물러나게 하자 막지 않았다.
채소를 널리 알리는 일은 절반쯤 성공한 셈이라 심균당은 섭정왕 탓에 일이 더디게 진행되지 않길 바랐다.
큰돈을 만질 수 있는 겨울철 채소 장사를 망치고 싶지도 않았고 가족과 친구들한테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섭정왕의 비위를 잘 맞춰 주어야 했다.
그에 반해 섭정왕은 심균당과 오붓하게 있는 게 좋았다.

평소 같으면 소풍거에도 하인들이 많았을 테지만 오늘은 연회가 있었으므로 대부분은 전정 화청에 가 있었다.
소풍거 화청에는 섭정왕과 심균당, 그리고 군침이 도는 음식이 있었다. 좋은 술만 한 병 있었다면 술, 음식, 사랑하는 사람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셈이 될 뻔했다.
섭정왕은 이왕이면 모든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식사를 즐기고 싶었지만 술을 마시고 실수할 뻔했던 심균당이 술을 내놓을 리 없었다.
심균당은 주량이 약해 두 번 다시 섭정왕 앞에서 술을 마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하, 소신이 준비한 발하공입니다. 먼저 소고기를 드십시오. 소고기를 육수에 넣은 다음 색깔이 변하면 건져 내 장을 찍어 드십시오.” 심균당은 섭정왕 옆에 서서 먹는 법을 소개하면서도 여전히 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심균당이 앉으려고 하지 않자 섭정왕은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식욕이 나지 않았다.


섭정왕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예의 차릴 필요 없어. 영흥후가 속으로 나를 수천 번 욕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네. 그렇다면 굳이 연기할 필요가 뭐가 있겠나. 어서 앉게. 같이 먹으면 좋지 않겠나.” 심균당은 웃어 주려고 했지만 섭정왕이 자기 마음을 꿰뚫고 있으니 굳이 가식을 떨 필요가 없었다.
‘내 마음을 아주 잘 아시는 것 같군요. 그런데 내가 한 식탁에 같이 앉아 밥을 먹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왜 모르시나요?’ 심균당은 할 수 없이 식탁을 훑어보고는 섭정왕한테서 제일 먼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방금 밝아졌던 섭정왕의 엔트리파워볼 얼굴에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애송이 녀석, 나와 가까이 앉는 게 싫다는 건가?’ 섭정왕은 영흥후부의 채소 사업을 몰수할 의사가 없었다. 사실 섭정왕이 간섭할 수도 없는 사업이었다. 이번만큼은 섭정왕도 심균당이 어떻게 하든 내버려 둘 작정이었다.
자리에 앉은 심균당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섭정왕의 얼굴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고개를 푹 숙였다. 젓가락으로 시금치를 집어 육수에 담갔다.
자존심이 강하고 오만한 섭정왕은 체면을 매우 중요시했다.
심균당이 멀리 떨어져 앉자 섭정왕은 가까이 와서 앉으라고 말할 수 없었다.
심균당이 생각에 빠져 있는데 옆에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심균당은 그 그림자를 힐끗 쳐다보다가 눈이 점점 커졌다.
염라대왕은 청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발로 걸어와 심균당 옆에 앉았다.
순간 섭정왕의 몸에서 익숙한 향이 났다.


심균당은 옆쪽을 힐끔거렸다. 하지만 옆에는 자리가 없었다.
옆에 자리만 있었다면 섭정왕한테 욕을 먹는 위험을 감수하고 옮겨 갔을 터였다.
두 자리는 거의 붙어 있는 것처럼 아주 가까웠다. 너무 가까워 두 사람의 소매가 닿을 정도였다. 어두운 색과 밝은 색이 교차하자 확 눈에 띄었다.
심균당은 조용히 팔을 거두어들였다. 소매도 팔을 따라 검은색에서 벗어나 몸에 착 달라붙었다.
섭정왕이 가까이 앉아 있었으므로 심균당은 바짝 긴장했다.
섭정왕은 먼저 앉은 자리에 그릇과 젓가락을 그대로 두고 심균당 옆에 앉았다.
이 사실을 안 심균당이 식사 도구를 가져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섭정왕의 시선이 심균당에게 옮겨졌다.
“뭘 하려는 거지?”
“전하의 식사 도구가 아직 저곳에 있어서요. 소신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섭정왕은 긴 팔로 비쩍 마른 심균당의 어깨를 눌렀다.
남자가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시도하자 심균당은 몸을 떨었다.
심균당은 무의식적으로 친밀한 접촉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섭정왕의 손은 크기도 크기지만 힘도 무척 셌다.
심균당의 소소한 반항은 섭정왕에게는 개미가 나무기둥을 흔들려는 것처럼 무모했다.
“앉아. 그런 것까지 자네가 할 필요는 없어.” 섭정왕의 말은 다분히 명령조로 들리긴 했지만 그 안에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배려가 언뜻 느껴졌다.
어깨를 만져 본 섭정왕은 심균당이 너무 마른 것 같아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거지? 애송이 녀석이 살이 쪄 보였는데 아니었나? 어깨를 만져 보니 너무 말랐잖아! 겨울이라 옷을 많이 껴입어서 살이 쪄 보이는 건가?’ 섭정왕의 의외의 말에 깜짝 놀란 심균당은 다시 자리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섭정왕의 커다란 손에서 전기가 흘러나와 심균당의 온몸에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


‘이, 이게…… 대체 무슨 느낌이지? 왜 가슴이 뛰어?’ 손오공을 찍어 누르는 부처님의 손바닥 같아 심균당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심균당은 무심코 섭정왕의 손을 떼어 내려고 두 손을 가져갔다.
작은 두 손이 따뜻하고 커다란 손에 닿자 두 사람은 전율했다.
심균당은 깜짝 놀랐고 섭정왕은 뛸 듯이 기뻤다.
심균당은 기다란 손가 파워볼게임 락을 더듬다가 문득 자기 행동이 무엄하고 부적절하다는 걸 깨달았다.
심균당은 비역질이나 일삼는 남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섭정왕의 손을 만진 건 큰 실수였다. 이러면 아무리 결백을 주장해도 믿어 주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실수를 깨닫고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거두어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심균당보다 섭정왕이 더 빨랐다.
섭정왕은 심균당의 작은 두 손을 꼭 붙잡았다.


섭정왕은 내심 심균당의 손이 정말 작다고 생각했다. 뼈가 없는 것처럼 말랑말랑했을 뿐 아니라 유난히 보들보들했다. 웬만한 여자 손보다도 더 예뻤다.
섭정왕은 심균당의 모든 게 다 예뻐 보였다. 하늘에서 섭정왕을 위해 옷을 맞춰 주듯 그에게 딱 맞는 사람을 내려 준 것 같았다.
심균당은 살며시 눈을 아래로 깔았다. 얼굴은 이미 사과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섭정왕의 눈에는 무의식중에 좋아하는 사람 손을 만져서 부끄러워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심균당은 힘껏 손을 빼려고 애썼지만 힘이 너무 미미해 섭정왕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섭정왕이 힘을 주자 작은 두 손은 더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다.
섭정왕이 미소를 짓자 심균당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 이제 쑥스러워진 건가? 방금은 대담하게 내 손을 만지려고 했잖아. 체구는 왜소한데 간은 큰가 보군.” 심균당은 억울해 죽을 맛이었다.


‘내가 언제 손을 만지려고 했다는 거야. 난 그냥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던 것뿐이거든! 설혹 그럴 마음이 있었다 해도 정말 그럴 용기가 나한테는 없다고요. 정말이에요!’ 심균당은 입술을 깨물었다.
“전하, 조금 전에는 소신이 무심코 한 행동이오니 전하께서 너그럽게 헤아려 주십시오.” 심균당은 말하면서 손을 빼려고 했지만 여전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왜? 난 영흥후가 감히 못 할 일은 세상에 없다고 보는데.” 심균당은 어이가 없었다.
심균당은 무조건반사를 실험으로 증명해 보여도 염라대왕이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슨 말을 해도 궤변으로 들릴 거야. 내심 내가 자기한테 관심이 있을 거라고 착각할지도 몰라.’ “전하, 방금은 소신이 잘못했습니다. 소신이 사과하고 선물도 드릴 테니 손을 좀 놓아주십시오.” 이치를 따져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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