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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계승 ( 6 )
기억은 제일 먼저 여신상을 비추었다.
성체를 떠받치기 위해 두 팔을 벌린 석고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팔 위에는 성체 대신 한 남자가 거만하게 누워 있었다.
아주 잠깐 아이는 그 남자가 방금 죽인 왕이라고 생각했다. 얼굴에 흉하게 뒤집어쓴 금가면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피와 오물로 범벅이 된 소매 넓은 옷, 길게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전신에서 풍겨나오는 위험한 기운은 너무나 친숙한 것이었다. 그 남자는 선주가 틀림없었다.
상황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격렬한 싸움을 했던 듯, 가면의 입에선 연신 하얀 숨이 새어나왔고 옷은 찢겨 가슴께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쇄골과 목덜미에도 상처가 가득해서, 배어나온 피가 여신상의 옷주름을 타고 흘러내려 피웅덩이를 이루었다.
방에는 한동안 핏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만 크게 울렸다. 그 단조로운 소음에 별안간 다급한 발소리가 섞였다. 누군가가 긴 복도를 달려서 이 방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우르릉 소리와 함께 커다란 문이 열리자, 선주는 누운 채로 슬쩍 고개를 돌려 문간을 바라보았다.
“”아…아.”” 파워볼사이트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바닥에 끌리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마름모꼴 무늬로 세공된 보관을 머리에 쓴 여자였다. 아마도 저 사람이, 이 유혈극으로 끝장나버린 결혼식의 신부였던 모양이었다. 아연한 표정으로 사방을 돌아보던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당신이 한 짓인가요?””

그제서야 아이는 그 신부의 정체를 알았다. 그건 블뢰유였다. 이전의 기억에서 보았던 것과는 인상이 판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에, 목소리를 듣고 찬찬히 뜯어보기 전까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표독스레 선주를 노려보는 저 여인에게서, 파워볼게임 주먹밥을 베어물고 능청을 떨던 소녀는 찾아볼 수 없었다. 눈에 띄게 얇아진 입술에서는 상냥한 말이나 장난스런 인사 따윈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제일 큰 변화는 머리카락이었다. 괴로운 일이라도 겪은 것인지, 금가루를 뿌린 분홍빛으로 화사하던 머리카락이 새하얗게 세어 버린 것이었다.
그 때문에 분위기가 반전되어서, 원래는 인상을 발랄하게 만들었던 눈물점은 수심의 상징처럼 보였다. 머리에 꽂은 꽃조차 우울한 색조의 푸른 꽃으로 변해 있었다. 그때의 블뢰유에서 변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면, 그럼에도 아름답다는 사실, 단 하나뿐이었다.
“”묻겠어요. 당신이, 제 신랑을, 그리고 여기에 모인 맹약의 증인들을 모조리 죽인 건가요?””

선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전히 비스듬히 누워 있을 뿐이었다. 블뢰유는 화난 듯 저벅저벅 선주를 향해 걸어나갔다. 길게 늘어진 드레스의 옷자락이 방바닥에 흥건히 고인 피에 젖어서, 붉은 빛으로 물들어갔다. 블뢰유는 선주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말했다.
“”아무리 이 자들이 증오스럽고, 죽어 마땅하고,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이들을 죽인다고 거악이 사라지진 않는다고 했잖아요. 당신은 죄인을 죽인 게 아니라 균형을 죽인 겁니다. 왜, 왜 이런 짓을.””
아,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입을 벌렸다. 선주와 나누었던 어떤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한 때, 마술사들이 모여 제국과 같은 마술사들의 나라를 하나 더 세우려고 엔트리파워볼 했던 때가 있었다고 했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것을 부숴버렸다고 했었다. 그들이 섬기던 신이, 림의 잊혀진 신전에 목 베인 채 놓인 세 위의 신이었다고. 아마도 이 결혼식은 단순한 동맹이나 정략 결혼 따위가 아니라, 보다 큰 의미를 가진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당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시겠어요? 당신은 제국을 괴물로 만들었어요. 세계라는 모래시계가 놓인 탁자의 다리를 베어버린 거라구요. 이런 날이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분노한 듯 말을 이어나가던 블뢰유는, 가까이서 선주의 상태를 확인하고 입을 다물었다. 단신으로, 이 결혼식에 모여든 수백이 넘는 고위 마술사와 싸운 선주는, 척 보기에도 위중한 상태였다.
가면으로 가린 얼굴조차 성하지 않은 것인지, 가면의 턱에도 피가 고여 목선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블뢰유는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가느다란 손가락을 선주의 상처 가까이로 옮겼다.
“”우선, 치료를 좀 받아야겠군요.””

재생력이 있는 아이와 다르게, 선주는 상처를 회복하는 힘 따윈 없었다. 이대로 놔두면, 과다출혈로 죽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의 상처였다. 하지만 선주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매몰차게 블뢰유의 손을 쳐낼 뿐이었다.
“”꺼져.””
그리고, 여신상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가면의 턱에 고인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블뢰유는 손을 매만지며, 그런 선주에게 조용히 물었다.
“”난 당신을 이해시켰다고 생각했어요. 당신도 동의하지 않았나요. 왜, 나를 배신했는지,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변명이라도 좀 해 봐요.””
“”배신한 적 없다.””
선주의 목소리는 가면 속에서 울려서 쇳소리와 섞여 나왔다.EOS파워볼
“”균형이라, 멍청한 소리지. 균형이 문제라면, 제국의 마술사 놈들도 다 죽여서 없애 버리면 그만이지.””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되는 멍청한…!””

“”헤어질 때 말했지. 균형을 깨지는 않겠다고. 하지만 가능한 한 모든 마술사를 죽이겠다고. 난 내 말을 지킬 뿐이야. 너한테 책망을 들을 이유 따윈 없는 것 같군.””
아이는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제국을 세운 파계 율사는, 원래 두 개의 제국을 세우려 했다고 했다.
서로 견제하며 공존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계획은 선대 마술사 살해의 신의 사도였던 선주가 부숴버렸다. 로투스바카라


그래서 한 개의 제국만이 남아서, 제국이라는 일반명사를 자신의 이름으로 삼아버렸다.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건만, 사실은 조금 더 복잡한 뒷사정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둘 사이에는 이미 어떤 합의가 오고 갔던 것처럼 보였다. 계약을 주선하는 파계 율사의 힘으로, 균형을 깨지 않겠다는 계약을 맺은 것처럼. 하지만, 선주는 상식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그 계약을 이행하려 하는 모양이었다.
이 세상의 마술사를 모두 죽여서, 양쪽의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비틀거리며 여신상에서 내려온 선주는, 천천히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고개를 숙인 채 부르르 떨던 블뢰유는, 툭 말을 던졌다.

“”혹시 복수인가요.””
무슨 말인지 들어나 보자는 듯, 뒤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선주의 발걸음도 멈추었다. 블뢰유는 또렷한 목소리로 천천히 물어보았다.
“”당신을 버리고, 두 개의 나라를 세우려고, 권력자들에게 몸을 바쳐온 것에 대한 복수.””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촛불이 일렁이며 불빛을 뿌렸다. 금가면에 고개 숙인 블뢰유의 뒷모습이 비추었다. 잠시 뒤를 돌아보던 선주는, 조소하듯 피식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생각하던지.””
“”아니면, 아니면.””
블뢰유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녀의 눈 앞에는, 가면을 벗긴 채 쓰러져 죽은, 왕의 처참한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혹시 이게 날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나요.””
선주의 발걸음은 또다시 멈추었다. 확신을 얻은 듯, 블뢰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저런 사람의 신부가 되는 게, 보기 싫었나요.””
“”닥쳐. 망상도 지나치군.””
그 모습을 보던 다나는 숨을 짧게 들이쉬었다. 저 자는 어떤 왕국의 왕이라고 했다. 후사를 구하지 못해서, 대가 끊길 위기라서, 자신의 아이를 품어줄 수 있는 특별한 아내를 찾아 헤매던 왕. 7위계의 마술사라면, 저주를 견뎌내고도 아이를 낳아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법 했다.
아마도 블뢰유의 구상에 협조해서 세속적 권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결혼을 요구한 모양이었다. 저 신부복으로 보아, 블뢰유는 그 요구에 동의한 것일 터였고.
“”넌 이제 나한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자만심이 지나치군.””

“”그럼, 왜…””
뒤돌아선 블뢰유는 울고 있었다. 언제부터 울고 있던 것인지, 이미 눈물점을 따라 뺨을 지나서 턱에까지 눈물이 방울져 있었다.
선주는 잠시 뿌리박힌 듯 서 있었다. 할 말을 찾기 힘들었다. 꺼지라거나, 사라지라거나, 그런 말로 물러서는 여자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피 냄새와, 어디서부터 흘러오는 것인지 모를 꽃향기가 뒤섞여 비강을 맴돌았다. 선주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가장 익숙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 한복판에 흉물스럽게 새겨진 흉터였다.
“”그것의 정체를 알았다.””
귀신이 비웃는 얼굴처럼 보이는 그 흉터를 매만지면서, 선주는 말했다.
“”몸 속 깊은 곳, 갈비뼈를 걷어내면 드러날 폐부 그보다도 깊이, 심장과 잇닿은 곳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것…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내 일부로 함께할 불씨. 너와 헤어지고 나서 이 녀석의 이름을 알았다.””
“”그게, 뭔가요.””

“”증오.””
딱 잘라 대답하고, 선주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블뢰유는 황급히 선주를 뒤따랐다. 강하게 붙잡을 용기는 없었던 듯, 소매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선주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최대한 냉소적인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 중에서도, 마술사에 대한 증오다. 네가 옛날에 했던 말처럼 난 텅 빈 인간이야. 내 것이라곤, 이 빌어 쳐먹을 증오밖에 없어. 그러니 이게 시키는 대로 따라갈 뿐이야.””
이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은 대답이 되겠지. 선주는 속으로 중얼거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피를 너무 흘린 탓인지 버티기 힘들 정도로 어지러웠다. 이 말이 효과가 있었던 듯, 소매를 붙잡고 늘어지던 블뢰유가 소매를 놓는 게 느껴졌다.
“”그런가요. 고작 그런 이유였군요.””
“”그래. 고작 그런 이유다.””
“”그럼 그런 보잘것없는 이유 때문에, 창녀처럼 이 곳 저 곳에 몸을 팔면서 균형을 맞추려고 돌아다닌 제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군요.””
말은 비수처럼 선주의 등에 꽂혔다. 철벅, 선주가 강하게 발을 멈추었기에, 고인 피웅덩이가 튀어 물소리를 냈다. 하지만 표독스레 이곳을 노려보는 블뢰유의 말은 끊이질 않았다.
“”그럼 이제 또 가랑이를 벌리면서 돌아다녀야곘군요. 닳고 닳아서 이 꼴이 된 여자를, 이제 사 줄 사람은 있을까요?””

“”닥쳐.””
“”당신 때문에. 당신이 전부 망쳐버려서.””
“”닥쳐!””
도발을 참지 못하고, 선주는 블뢰유에게 달려들어 바닥에 깔아뭉갰다. 블뢰유는 힘없이 카펫이 깔린 계단 위에 넘어져서, 선주 밑에 깔렸다. 이성을 잃은 선주는,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깊게, 블뢰유의 어깨를 짓누르며 외쳤다.
“”너도! 너도 예외가 아니야!
그 고함 때문에, 위태롭게 선주의 얼굴에 걸려 있던 가면이 바닥에 떨어지며 쨍그렁 소리를 냈다. 가려져 있던 선주의 얼굴은 그제서야 드러났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선주는 그 사실도 눈치채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네가 바라는 세계라는 게 얼마나 잘난 건지 모르겠지만, 그 따위 방식으로밖에 유지 못할 세계라면, 내가 다 쳐 부숴버릴 거다!””
반응이 이상했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만 해도 표독스러웠던 블뢰유의 얼굴은, 마치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그제서야 선주는 자신이 실언을 한 것을 깨달았다. 이 말은, 방금 전 블뢰유의 추론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블뢰유의 어깨를 붙잡은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선주는 멍청하게 고개를 들었다. 이름모를 꽃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왔다. 어지러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눈에 무엇이 낀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만 보였다. 그 와중에도, 꽃 향기는 점점 더 진해지고 있었다.
“”이건, 무슨.””
간신히 그 이유를 알았다. 가슴 전체에, 그리고 등에. 부드러운 감촉과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밑에 깔려 있던 블뢰유가, 몸을 일으켜 자신을 포옹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대로, 멍하니 앉아 있는 선주의 귀에, 이런 말이 들려왔다.
“”당신은 상냥한 사람이에요. 난 알고 있어요.””
“”개소리, 집어쳐.””
“”그 증거로, 봐요. 지금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걸요.””
그 말에 선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가면이 벗겨져 있던 것을,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블뢰유의 제멋대로인 말은 끊이지 않고 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구해줘서, 고마워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살면서 수없이 적을 베어왔어도,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입술에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져왔다. 피와 오물로 더러워진 입에, 블뢰유가 입술을 맞춰온 것같았다. 입술에 감도는 그 깃털 같은 감촉은, 몇 분 간이나 사라질 줄을 몰랐다.
“”그러니까, 당신의 일부에 그런 슬픈 이름을 붙이려고 하지 마세요.””
가슴의 흉터를 매만지면서 블뢰유는 말했다. 따뜻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이대로 이 온기와 꽃향기 사이에 앉아 있다간, 무언가가 전부 무너져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 순례자야.’
아이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림의 목소리가 들렸기 떄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을 부르는 말이 아니었다. 그 목소리에 반응해 흠칫 떤 것이, 자신이 아니라 선주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마술사 계집은 언제 죽일 생각이냐?’

이 시절의 림은 인간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고, 사도가 마술사를 죽이도록 강요했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 말대로였다. 지금과 달리, 천 년 전 림의 어조는 무겁고 차갑기만 했다. 선주는 블뢰유를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완전히 체중을 싣어 선주를 껴안고 있던 블뢰유는, 작은 신음을 흘리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럼, 네 이름이라도 붙이라는 소리냐? 웃기는군.””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뒤돌아서서, 선주는 출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들으라는 듯 내지른 이런 목소리가 방 안에 울릴 뿐이었다.
“”분명히 경고했잖아. 불행해질 거라고. 내 삶 언저리에서 좋은 일 따위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문 앞에 다다라서, 마지막으로 뒤를 한 번 돌아보고, 선주는 크게 소리질렀다.


“”꺼져! 거슬리니까!””
쾅, 거대한 문은 그 몸집만큼이나 큰 소리를 남기고 닫혔다.
덩그러니 남은 금가면만이 촛불을 받아 빛날 뿐이었다.

이번 기억은, 이것으로 끝났다.
*
승강기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와 동시였다.
1층과 같은 구조였다. 혼을 흡수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모두 마주하면, 자동으로 승강기가 움직여 다음 층으로 향하는 구조. 다른 것이 있다면, 분위기 뿐이었다. 자조적인 농담이라도 던졌던 1층과는 다르게, 지금은 아무도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저기…””
두 번이나 기억을 흡수하면서, 다나는 이제 선주의 존재를 명확하게 의식하게 되었다. 더 이상 얼버무릴 수 없게 된 아이가 개략적인 설명을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다나는 움찔거리면서, 선주에게 말을 걸려 했다.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쭈뼛거리며 손을 내뻗던 다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을 삼켰다.
말이 들려온 것은, 승강기가 절반 넘게 움직인 후였다.
‘애송이. 부탁이 있다.’
“”말하세요.””

‘담배를 하나 꺼내줄 수 있을까.’
승강기는 담배가 완전히 재가 되어 소멸할 즈음, 3층에 도착해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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